새삼스러운 인터넷 예찬 ;

내가 군복무 하던 시절 나의 누이는 저 머나먼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래도 피를 나눈 가족이니 서로의 안부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편지를 주고받을때 동생이 사진을 동봉하여 보내주곤 했다. 

동생이 있는 캐나다에 편지를 보내면 한 7일후에 동생이 받아보고 다시 동생의 답장을 받으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서로 편지 한 통 주고 받는데 보름씩이나 걸리는것이다.

게다가 요즘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부탁을 하면 동생은 수동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그걸 다시 돈을 주고 인화하는데 그시간까지 합하면 20일은 족히 걸린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20년전쯤 얘기 갔지만 불과 12여년전쯤 이야기이다. 

굳이 외국뿐만이 아니라
서울의 우리집에다 보내는 편지도 주고받는데 족히 열흘은 걸렸다.  군사우편이란게 검열이란게 있어서 민간우편보다 조금 더 걸렸던듯싶다.
그래서 이왕 보낼거 친구에게 보낼때도 석장은 기본이었다.
간혹 정말 답장이 기다려지는 사람에게 보냈을때는 수시로 행정반에 들어가 행정병에게 내 편지 안왔냐고 연신 물어보기 일수였고.
또 그런 답장을 받아들고 다시 편지를 보낼때면
주말 쉬는 시간을 거의 다 할애해가면서 열심히 쓰곤 했다.

종이에 쓰는 편지하나는 그 오고감에 있어 사람이 직접 이동하는 물리적 시간을 그대로 적용받는것이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불과 2년이 지났을때 갑자기 초고속 인터넷이란게 보급이 되었다.
정말 이건 불과 2년만에 느끼는 격세지감이었다.

더 이상 편지지에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히고 편지를 보내고 받는데 몇일씩 걸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어떤상황인가 열거해보자면.

내 지인들중 외국에 있는 사람이 몇명있는데
미국 휴스턴 댈러스에 대학후배가 1명있고 LA 에 동네후배가 한명가있고
아프리카 케냐에 대학시절 박사과정으로 왔던 아프리칸 형님이 살고있다.

거리로 따지면 수 천킬로미터 저 멀리 . 정말 머~얼리 떨어진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특히 아프리카 형님은 한국에 있을때 방학이면 고국에 갔는데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고 가서 스물몇시간이 걸렸었다.

아프리칸 형님과는 주로 핫메일과 msn 으로 연락을 한다.

엘레이에 있는 동생과는 카톡과 페이스북 그리고 가끔 네이트온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skype 로 음성대화를 한다. 
그 후배가 아이패드를 쓰고 난 서울서 스마트폰을 쓰는데
스카이프로 음성통화를 하면 그 통화품질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것처럼 깨끗하게 들린다. (둘다 wi-fi를 사용해서 그런듯)
중요한 일이 있을때면 페이스북에 남겨놓기도 하고 더 급할때는 바로 카톡에다 말한다.

한번은 통화를 하면서 카톡에다 보내는 문자가 전송되는데 얼마나 소요되는가 실험을 해본적이 있는데 
한 1-2초 가량이 걸리는듯 했다. (참고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와이파이신호를 잡고 카톡으로 보내는건 거의 실시간으로 뜸) .
한국에서 미국까지 수 천킬로미터가 떨어져있는데
인터넷회선으로 문자를 보내는데 불과 2초정도 소요되는것이다.
이거 너무 신기하지않나 ?
내가 이런거 두고 신기하다고 말하면 주위 사람을 귀찮게 할때가 있는데
물질이 이동을 하려면 매질이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놈의 인터넷은 무얼 매질로 이동하는건가

알고보니 (100% 확실한건 아님) 
태평양 바닷속에 해저광케이블이 깔려있다고 한다.
그 광케이블로 정보를 주고받는다고 하더군.
신기하다 그 망망대해 바닷속에 광케이블이 깔려있다는게.
결국 내가 보낸 문자나 사진 등이 그 태평양바닷속을 불과 1-2초의 속도로 오고간다는거 아닌가? 

가끔은 아이패드로 찍은 사진을 바로 그 자리에서 보내주기도 한다. 

역시 전송받는데 몇 초 안걸린다. 

20일이나 걸려서 사진한장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세상 정말 살기편해졌다...  


by 부라부스 | 2011/11/03 00:54 | 트랙백 | 덧글(0)

송지선 아나운서의 죽음에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않은 이유

야구팬이아니라면 송지선 아나운서나 임모 선수의 이름은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20여일전 인터넷에 한낱 가십거리로 떠돌기전만 해도. 

트위터 얘기가 나오면서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시도를 했단 소식이 아마 20여일쯤전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낄낄거리면서 송아나의 싸이글이란것을 여기저기 퍼다날랐고  
임모 선수의 이름대신 듣기 민망한 별명을 붙혀 그를 그 둘을 조롱했다.  

나 역시도 '참 희한한 조합일세 ' 하면서 연상의 아나운서와 한참 어린 풋내기 야구선수의 스캔들을 재밌다는듯이 받아들였다. 

그 이면의 '자살시도' 라는 사실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않고 말이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 말했다.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고 해프닝이었을뿐이라고.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했고 해명을 요구 아니 강요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성적농담으로 인터넷을 채워갔다. 송지선이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결심할때 
자살 시도자들의 공통된 특징중 하나가 외부에 자신의 자살을 암시한다고 한다. 
근데 그것이 바로 살려달라고 하는 요청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했다. 

그가 죽기전 그의 홈페이지 라는 '사람사는 세상' 에는 그의 마지막 심경이 어땠는지 자괴감에 가득한 글이 마지막으로
 올라왔었다. 
그의 주치의는 그가 죽기전 숨을 못쉴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죽기 몇일전 말했다해서 약을 처방해준적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것이 외부에 보내는 신호이다.  정말 죽을거같은데 자살할거 같은데 도움을 달란것이다.  

송지선 아나운서 역시 그러했을거라 생각한다. 

이미 20여일전에 그녀가 썼던 글. 

뛰어내리려고 보니 너무 무섭고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는. 
하나님 도와달라고 하던 그 트위터글. 

어쩌면 그녀는 그때 이미 자
살을 감행하여 죽었을수도 있었다. 
다행히 트위터에 퍼져 119가 출동했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녀는 그렇게 외부로 죽을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살고싶다는  요청을 보낸것이다. 

근데 하나 실수를 한게 있다.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괜찮았을텐데. 
아니 그녀가 그냥 평범한 일을 하는 공중에 알려지지않은 사람이었으면 다행이었을텐데. 

그녀는 소셜 네트워크나 웹이라는 장소를 잘못선택한 것이다. 

그녀가 회사에 말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썼던것이 그렇게 물의를 일으킬줄 몰랐다고. 

사실 개인적인 공간이 맞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개인적인 일로 덮어주려고 하지않았다. 

그녀가 한낱 해프닝으로 끝나고 새로운 삶의 시간을 갖게됐던 5월초이후. 

그녀가 자신의 고통을 삶의 무게를 덜고자 외부에 털어놨던 그 5월 이후 어제까지 주어진 시간동안. 

사람들은 그녀의 고통의 무게를 덜어주고 '자살시도'를 할정도로 힘들고 불안정한 상태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려고 하기보단. 

이런식으로 그녀를 재밋거리로 이용하고 여기저기 퍼나르고 웃어댔다.  어찌보면 죽을려고 했던 힘든 사람을 왜

안죽었냐 빨리 죽어라~~~~ 하고 등떠밀고 강요하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말이다. 

그녀가 원했던건 이런게 아니었겠지. 

나 너무 힘들어서 자살할거 같은데 좀 도와주세요.....이거였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그녀가 죽길 바라듯 조롱하고 등떠밀고 있었으니 20여일간.
뭐가 진짜냐 ! 너 거짓말이잖아 ! 해명을 요구하고 .  자기한테만 화살이 가는게 아니라 자기로 인해 임모선수까지 그 심판대에 오르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자기때문에 이 모든 것이 벌어졌다고 생각할때 그녀가 받았을 그 심적고통은. 

자기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야구를 좋아하던 시골소녀가 꿈을 이루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힘들어도 웃을수밖에 없는 자기가 사랑하던 그 직업을 버리고 싶지않았던 송지선이 누구에겐가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곳으로 선택했던게 바로 그 소셜네트워크 였는데 그게 더 일파만파로 커져버렸으니. 

모든게 자기 의도가 아니었고 회사에서도 거취여부가 어떻게 정해질지 앞둔 시점이었고. 

기자들과 네티즌들은 연일 낄낄대며 조롱해대는 그 시점에서 어쩌면 그녀가 강박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던것은 바로 또다시 
자살 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뛰어내렸다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녀가 처음에 트위터에 남겼던것처럼. 죽고싶지않은데 정말 죽는게 무서운데 하지만 또 죽을수밖에 없도록 
몰아붙히는 환경에서 갈팡질팡하다 그 두려움을 감내하고 모든걸 내려놓는 걸 의미한다. 

자살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것은 무의미하다. 

당연히 자살은 옳지않은 선택이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것이다. 

혹자는 그런말을 한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왜 자살을 하냐고. 

하지만 모든이가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자살들은 사회적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 를 가리지않는다.
다만 분명한것은 모든 자살자들은 힘든 상황속에 있었고 자살을 선택한 순간 그들은 매우 불안정한 심리상태였단 것이다. 

어찌보면 그들이 외부에 신호를 보냈을때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시시비비를 따지고  조롱하고 뭐가 진짜냐 뭐가 거짓이냐며 따지고 몰아붙이지말고  그들이 불안정한 상태라는걸 감안 덮어주고 감싸주고 모른척 해줬어야 한다. 

누구를 좋아했고 그로인해 상처받고  이런 일들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지나지않는다. 

그런걸 너무 공론화 하고 무한대로 확대 재생산해버린게 아닌가 한다. 그로인해 그녀가 20여일전 이후 다시금 삶이 주어진후 
더 힘들게 만들어버린것 같고

그래서 네티즌들 모두 나를 포함 마음이 편치가 않다. 






by 부라부스 | 2011/05/24 20:45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와 울지마 톤즈의 故이태석 신부





두 사람은 공통점과 매우 많이 다른 차이점이 있다.

둘 다 목자가 되기전에 많이 배운 사람이다.

전목사는 세칭 명문대라 하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를 나왔고  이신부는 의대를 나온 의사 였다.


또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만인의 입에 회자되고 있단 점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단건 그 만큼 좋은쪽이던 나쁜쪽이던 인기가 있단 것이다.


연령대도 같은 40대로 비슷하다. 이신부가 더 젊다.



하지만 차이점도 많다.

전목사는 삼일교회를 10년간 이끌었는데 이신부는 8년간 분쟁지역인 아프리카 수단에 가서 의료활동과 선교 구호활동을 했다.

전목사는 살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이신부는 그가 죽어서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전목사의 학력은 그가 쓴 수 많은 자기개발서류의 책들에 나와있지만  이신부가 의대 출신이란건 그의 아프리카 수단 의료활동

으로 알려진바이다.

전목사는 설교를 매우 시니컬 하게 비판적으로 마치 타인을 정죄하듯 하지만

이신부는 말보다 직접 행동으로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는 자신이 대장암 말기였음에도 늘 자애로운 선한 웃음을 잃지않고 '가장 보잘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는 성경말씀을 몸소 8년간 이나 오지에서 실현하셨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그렇게 살다 가신분이었다.


최근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전목사 의 신도들은 전목사 의 설교 스타일처럼 이에 대해 비이성적 모습들을 보였다.  외부의 비판에 대해 공격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교회가 전목사로 인해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양적 성장을 이뤘다한다.

이번 사건이 있기 전 삼일교회 홈피 대문은 사실 전목사의 동정 사진으로 도배되어있었다.

전목사가 수 백만원짜리 카본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진 , 전목사가 에르메스 벨트와 고급 양복을 입고 있는 사진 , 전목사가 여자매

들과 브이자를 하고 있는 사진 , 전목사가 여기저기 다니며 방긋 웃으며 맛있는걸 먹고 있는 사진

심지어 새로 지은 교회 건물에 가면 1층에는 전목사의 전신 브로마이드 같은게 세워져 있었다.

책도 많이 내고 서점서 싸인회도 하더라.

그리고 설교를 하면 마치 삼라만상을 정죄하듯 그 오만한 설교.....


그 시간에 같은 하나님의 사제인 이신부는 온몸에 암덩어리가 퍼져있는 상태에서도 봉사와 헌신으로 삶을 살고있었다.


그리고 둘 다 떠났다.

이신부는 하나님 곁으로 떠났고
전목사는 성추행 이라는 추문으로 스스로 떠났다.

자......뒤에 무엇이 남았는가.

전목사의 뒤에는 그를 따르던 신도들이 사탄의 계략이네 전목사 죽이기네 정신이상한 자매의 침소봉대로 이렇게 됐네 하며
화살을 전목사가 아닌 외부로 돌리고 있다.

이신부의 선종 뒤에는 아프리카 오지 분쟁지역인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추모하는 연주를
했다.

우리가 아무리 겉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도 언젠가 그 알맹이는 빛을 보게 마련이다.

음행은 음행대로 세상에 드러날것이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아도 다이아몬드같이 빛나는 선행은 선행대로 나타날것이다.


삼일교회 홈페이지에 가면
이단연구라 하여 천주교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있다.

과연 어떤 목자의 삶이 주님보시기에 이단이고 , 주님께서 사랑하는 목자의 삶이었겠는가.

판단은 여러분들이 해주길 바란다.

by 부라부스 | 2010/11/16 19:10 | 트랙백 | 덧글(15)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 비판

먼저 이글은 교회를 비판하는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느낀거 몇 개 짧게 말해보자면

삼일교회에는 예수님에 대한 홍보가 더 큰가? 전병욱 목사에 대한 홍보가 더 큰가 ?

말은 청년들과 목사가 가까워지기위해 그런다지만 내가 볼땐 전혀 그렇지않다.

교회 홈피에도 전병욱 목사들의 사진이 매일 업데잇 되고 교회에도 십자가도 없다.

로비에는 전목사의 브로마이드 같은게 세워져있을정도다.

전목사는 수행원 역할을 하는 사람들까지 달고 다닌다.

참 의아하다.

예수님을 섬기는곳인가? 아님 전병욱 목사를 섬기는곳인가?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대다수 라는 이 교회 청년들은 그런 비판에 옹호로만 일관한다.

내가 과거 JMS 를 잠깐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목사를 비판했을때 봤던 청년들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않다.


전목사는 설교를 잘한다.

지루하지않고 재밌다. 쉽다. 설교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설교가 너무 가볍단 것이다. 그때문에 청년들이 많기도 하다.

어렵고 무거우면 당연히 청년들이 안좋아하겠지.

마치 이건 설교라기 보단 처세술 강의를 듣는거같다.

연애부터 해서 이거저거 삼라만상을 다 얘기하는듯 하다.

근데 문제는 전목사의 오만이다.  모든 분야에 대해 모든 인간사의 감정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듯 규정해 버린다.

정의를 내려버린다. 난 이게 상당히 잘못된 오만이라 생각한다.

여학생들에 대해 언급하는 몇몇 부분들 화장에 대해 언급했던것들.

상당히 잘못된 사고라생각한다.

삼일교회 홈피에 가면 이단 에 대한 기술이 있는데 천주교도 이단취급한다.

적어도 천주교는 공번된 교회라서 공의회를 통해 하달되고 또 일반 신도들의 뜻이 교황청까지 상향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적어도 사제의 개인적인 생각들. 오만함이 신도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사제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이지 이게 정의다 . 저건 악이다 하고 규정짓는 오만함을 범하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이다.


삼일교회가 자랑하는것중 하나가 바로 단기간의 교회의 양적성장이다.

근데 진 이라는거 잘 보자.

교회가 남녀 사교의 장인가? 

신자끼리 교제하는건 물론 좋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서 교회에 화장 하고 짧은 치마 입고 화장실은 화장고치러 메어터지고

연애질하는데 혈안이라면 잘못된것이다.  공격적으로 자매님들 형제님들 끌어모아 마치 영업사원 영업뛰는 신도수 양적성장만

이루면 그 내실까지 담보되는가 ?


가장 문제점은 전병욱 목사의 독선에 가득한 설교방식이다.

그는 간간히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취하는데

자신을 못생기고 못나고 그런사람으로. 

그거 역시 일종의 테크닉이라 생각한다.

그는 이미 교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거대하게 구축했다 생각한다.

성경에도 나와있다.

말이 너무 많으면 헛말들이 나온다는거.


난 삼일교회가 좀 더 재미없는 교회가 됐음 한다.

목사보다 예수님이 느껴지는 그런 교회가 됐음 한다.

그리고 남녀의 교제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본질인 아주 재미없는 교회가 됐으면 한다.

by 부라부스 | 2010/06/16 03:07 | 트랙백 | 덧글(0)

남뉘엔 (남누옌)

금일 (2월 28일 2010년) 동계올림픽 피겨 갈라쇼에 출연한 12세 캐나다 소년이다.

1999년생으로 베트남계 캐나다 소년이다.

갈라쇼 당시 해설자의 발음으로 우리에게는 '남뉘엔'으로 알려져 있으나 영어 발음은 정확히 '데니얼 남 누옌 ' 이다.


全캐나다 쥬니어 대회를 2회나 석권한 유망주이다.

나이가 어린관계로 4년후 소치 대회는 힘들거같고 8년후 동계 올림픽 대회서 기대해볼만하겠다.

외국 나이로 11세로 트리플 악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by 부라부스 | 2010/02/28 21:31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